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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July, 2005

즐거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July 21st, 2005 No comments

작은 조카는 나보다 한 살이 어리지만 생일이 빨라 우리는 대학 동기가 되었다. 큰 조카는 두 살이 많은데,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고 한다. 성년이 되면서 어른들은 그 애들더러 나한테 존대를 하라고 했다. 하긴 내가 조카들 아버지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니 반말하기도 좀 그렇긴 하다. 어렸을 때 우리는 꽤 친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렇게 우리의 친밀함은 끝나버렸다. 대구에 큰 아버지 댁에 가뭄에 콩나듯 제사지내러 갈 때마다 우리가 주고받는 것은 이제 형식적인 인사뿐이다. 서로 어색해서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다. 작은 조카를 오늘 학교에서 만났다. 늦잠이라도 잔 모양인지 자연대쪽으로 황급히 걸어가고 있었다. ‘안녕’하고 인사를 했더니 목례 한 번 하고 가버린다. 한 달 쯤 전에 복학하고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그녀에게 ‘오랜만이네? 잘 지내냐?’라고 물었을 때 돌아왔던 대답은 ‘예.’ 한마디였다. 그녀는 다시 식판으로 시선을 돌렸고, 어색해진 나도 밥을 먹었다. 친척이라고 해서 친하게 지내야된다는 생각같은 건 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남도 아닌데 이 정도까지 어색해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조카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으니 더 심하다. 물론 훌륭하신 선비집안에서 망쳐놓은 것 중에는 내 친척관계만이 아니라, 여동생과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너 페미니스트야?” 혹은 “너 여성주의자야?”처럼 어느 쪽인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대충 이런 사람들의 80%는 마초이고, 20%는 저런 질문으로 내가 자신들의 동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이다.이런 질문으로 자신과의 교집합을 확인하려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인 것 같다.). 저런 경우에 나는 그냥 아니라고 대답한다. ‘남성 페미니스트’와 같은 단어에 대해 고민한 적도 있지만 그게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레테르를 뭔가 하나 붙이고 싶었기 때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제 그런 거에 별 관심없다. 나에게는 내가 세운 기준들이 있고, 그냥 그 기준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한다. 다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성별에 관계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것이라는 말처럼 기만적인 말이 없으니) 현실적으로 말하면 즐겁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촌수, 성별, 나이 등등과 관계없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가시나는 공부 못해도 된다.’라는 말에 상처받는 동생이 나를 미워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고, 친해지지는 않더라도 조카들과 학교에서 만나면 웃으면서 차 한잔은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밤에 내 앞에 가고 있던 여성이 불규칙한 구두굽소리를 내며 불안함을 드러내는 일도,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일면식도 없는 여성이 나를 경계하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이의 신뢰가 더욱 쌓여서, 의도하지 않게 치한으로 몰리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지하철을 탈 때 여성전용칸이 운영되는 시간인지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질 것 같다. 내가 촌수가 높거나/낮아서, 나이가 많거나/적어서 혹은 남성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사양이다. 말하자면 나는 이런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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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0706

July 7th, 2005 No comments

aristo님과 함께 7월 5일 “야성적 순수: 21세기 청춘백서“전에 가서 드디어 <고양이를 부탁해>를 극장에서 봤다. 스무살 청춘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시작하는 오프닝(그리고 의 “진정한 후렌치 후라이의 시대를 갔는가“!), 참신한 typography, 생생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전했다. 4년 전에는 ‘Goodbye’란 한 마디 던져놓고 떠난 지영(옥지영)과 태희(배두나)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는데, 이번엔 고양이를 부탁받은 비류(이은실)와 온조(이은주)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다. 의문의 대상이 왜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확히 10명이 함께 봤던 서울아트시네마의 좌석에서 염맨님을 만났다. aristo님과 서로 알아보고 인사를 하길래 나도 인사를 했다. 입대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러 오셨단다. 휴가 나왔을 때 마침 보고싶은 영화가 개봉하는 일이 반복되는 군생활이 되기를 기원한다. 씨네꼼과 얄라셩을 헷갈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흠흠… 많이 쪽팔렸다. 밥을 먹고 aristo님의 제안으로 쌈지길을 구경하러 오랜만에 인사동을 거닐었다. moohle이 찍은 쌈지길 사진을 연상했는데, 생각보다는 작았다. 폐장 10분 전에야 도착해서 제대로 못 봤는데, 나중에 옥상에서 음료수 한 잔 사서 벤치에 앉아서 먹고야 말리라.

6일에는 경제학개론 중간고사를 봤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본 댓가가 작지 않으리라는 것은 각오했으나, 내가 예상했던 파트에서 나온 것은 단 한 문제. 앞으로도 긴장하지 않으면 졸업이 언제 무산될 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시험이 하나 끝났으니 저녁에는 장충동에서 족발을 먹고 을지로에서 골뱅이와 함께 2차를 했다. 집에 돌아오니 가족들이 오늘 당일치기 피서 간다고 한다. 난 학교에 가야 한다. 여름이 이렇게 지나간다. 가끔은 다이나믹하게 대체로 심심하게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지난 이틀은 다이나믹했었으니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