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렌디한남 따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대세에 따라 블로그를 해외로 이전했다. 아무래도 가입형 블로그는 이제 답답해서 못 쓸 것 같아서, 그리고 이전의 서버였던 미리내의 서비스가 다소 불만이었기에 호스팅 서버를 해외서비스인 Media Temple로 옮겼다. 국내의 서비스가 좋은 호스팅서비스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서비스는 대만족이다. 그러나, 한글로 된 매뉴얼이 없는 관계로 익숙해지기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7월말에 이전을 시작하여 9월 말에 완료한 데는 영어의 압박이 컸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데이터베이스(MySQL)의 이전이었는데, phpMyAdmin의 버전이 달라 UTF-8 인코딩이 깨져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해도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아예 과거의 블로그는 수작업으로 천천히 옮기고 새로 블로그를 생성하려 했었다. 다행히 8con.net으로 유명한 8con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셔서 삽질을 면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한 없는 감사를.
지난 번 미국 출장 결과를 보고하면서 같이 갔던 계열사 일행이 Web 2.0에 대해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때부터 뭔가 위기감을 느꼈는데, 최근에는 Twitter의 열풍 때문인지 사내 KM에 오만가지 웹서비스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나는 중학교 때부터 회사까지 아이디 또는 닉이 모두 동일하므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회원제 사이트는 일제 정리를 할 예정이고 이 블로그는 폭파 1순위이겠지만, 나는 이 블로그의 몇 안 되는 구독자 분들께 말도 안되는 약속을 해 버렸기 때문에 블로그는 없앨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운영중인 블로그 등과 가입된 모든 사이트에서 ID 혹은 닉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으니… 이 곳도 예외는 아니다.
(임시)이름을 뭘로 할까 하다가 ‘말없는 등으로 기대고 나눈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고, 올해도 포스팅에 한 번 등장하셨던 바 있는 백무산 시인의 시 「침묵」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감히 나 같은 인간이 인용할 시는 아니지만, 난 개념이 없으니까…는 아니고… ^^a
입보다는 등으로 ‘말’하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이라고 해 둡시다.
나무를 보고 말을 건네지 마라
바람을 만나거든 말을 붙이지 마라
산을 만나거든 중얼거려서도 안된다
물을 만나더라도 입다물고 있으라
그들이 먼저 속삭여올 때까지
이름 없는 들꽃에 이름을 붙이지 마라
조용한 풀밭을 이름 불러 깨우지 마라
이름 모를 나비에게 이름 달지 마라
그들이 먼저 네 이름을 부를 때까지
인간은
입이 달린 앞으로 말하고 싸운다
말없는 등으로 기대고 나눈다
백무산 – 「침묵」
사회면 기사를 보다가 그가 노동자일 때
흉악한 범죄자가 무슨 기업 무슨 공업 노동자일 때
내가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일하는 공장에 노동조합이 없거나
조합이 있어도 몸을 판 매음조합이거나
그도 아니면 짓눌려 살다가 얼이 나간 저능조합이거나
권리 행사를 원천 봉쇄한 악질기업일 때
법이 억압과 탄압을 보장 방관 묵인할 때
부당함에 대항해 싸울 권리를 박탈할 때
박탈당한 자는 부당한 자가 된다
그래서 소외 계층을 돌봐야 한단다
권리는 빼앗고 동정의 손길이 있어야 하므로
인간성 교육을 하잔다
부당함을 당해도 참아라 인내하라 할 말밖에
또 있으면 말해보라
자본은 힘과 지식과 시간만을 빼앗는 게 아니다.
백무산, “부당한 인간” (전문)
현 대통령이 사장으로 있던 회사가 거느리고 있는 계열사에서 일요일도 없이 하루 열 몇 시간을 일하며 청춘을 보낸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사장이 경영목표를 높이면 높일수록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 죽음만큼 많은 이익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사장 스스로 좋아하는 ‘불도저’라는 별명이 사실상 ‘살인자’와 동의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수많은 산업재해들이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30대의 초입에 들어설 무렵, 그는 이 땅의 노동현실을 시로 쓰기 시작한다. 백봉석이 아니라 백無産이라는 이름으로. 세월이 흘렀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또한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은 바뀌어 갔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황석영이 손학규를 지지했던 2007년 대선에서 그는 문국현 지지선언을 했다. 황석영이 손학규를 지지하고 백무산이 문국현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백무산이 다니던 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회사의 사장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1996년에 발표된 이 시는 2009년 다시 현실이 되었다.
5월 18일이다. 1980년의 ‘학살자’와 2009년의 ‘살인자’는 결국 ‘따로 또 같이’이다. (한나 아렌트의 견해를 빌면) 1980년의 ‘학살자’가 “폭력은 정당화될 수는 있지만 결코 합법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현실에서 입증했던 반면, 2009년의 ‘살인자’는 “폭력은 권력이 위태로운 곳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현실에서 입증하고 있다.
바쁘게 일하다보니 날짜보다는 요일을 기억하게 된다. 성년의 날 때문에 시끌벅적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밤 11시를 조금 넘겨서 택시를 타고 퇴근했고, 5월 18일이 끝나기 5분 전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반 동안 재택야근을 했다. 그리고 이 포스팅을 쓰고 있다. 어쩌면, 백무산이 문국현을 지지하는 것 만큼이나 어색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故 윤상원 열사처럼 도청사수를 부르짖으며 투쟁을 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삶에 찌들어도 ‘부당한 인간’으로 남지 않고 ‘오늘의 역사’를 잊지않고 새기면서 살겠다는 생각을 명확히 해 두기 위해 늦은 밤 자기모순의 포스팅을 한다. 열사의 말씀을 빌면,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