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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이 사진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그보다는 이 노래가 맴돌았다는 표현이 정확할까? 몇 달째, 때론 재밌게 때론 마지못해 줄창 일을 하고 있는데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출근해서 일을 하다가 문득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메었지만 갈 곳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쓰나미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와중에 매스컴이나 트위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개소리(개소리들이 너무나 넘쳐서 세세한 링크는 생략)들을 보며, 처음 앨범을 들을 때는 이해하지 못 했던 덕원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가 보기에 ‘이 미친 세상’은 ‘행복해야 돼’나 ‘잊지 않을께’와 같은 가사를 후렴구로 하기에는 너무나 미쳐서, 이 거친 어구를 후렴구로 만들고 열 네 번이나 반복(하고 방송금지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내우외환’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요즈음 나의 삶, ‘어디쯤 가야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힘의 불균형1) 속에서 어둠이 존재함을 확인해주는 기능 정도만 간신히 해 내고 있는 저 빛 속에 홀로 선 덕원처럼.
짝짓기에나 몰두해 볼까, 이 미친 세상에.
1) 이병률의 시 「길을 잃고 있음에도」에서(넘지 않으려 밟지 않으려 애쓰다 휘청였던 / 힘의 불균형에게 // 괜찮다며 괜찮다며) 인용 , 『찬란』 (문학과지성사, 2010) ↑
지난 한 주 동안 브로콜리 너마저의 두번째 정규앨범 <졸업>을 들으며 생각했던 건, “춤”으로 시작해서 “(보편적인)노래”로 끝나는 첫 번째 앨범과 들리 ‘말’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다.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말들. 2010년 10월 31일, 사흘간의 2집 발매기념 콘서트 마지막 날인 ‘막공’ 마지막 곡 (“2009년의 우리들”에서 이어지는) “졸업”을 들으면서 <졸업>은 “열두시 반”부터 “다섯시 반”까지 읊조린 브로콜리 너마저의 모놀로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혹은 나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이번 공연은 흔히 브로콜리 너마저를 까대는 자들이 얘기하는 ‘송라이팅은 신선하나 연주력은 스쿨밴드 수준’이라는 말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겠다. ‘자리를 찾으려 헤메’이던 이 사랑스럽기 이를데 없는 ‘청년’들이 하나의 훌륭한 밴드로 탈바꿈하는 ‘졸업’의 순간을 본 것 같은 느낌.
거짓말같이 맑은 하늘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나면
무더운 날이 없던 것처럼
그렇게 새로운 계절은 오는데
난 마음이 작지만
그런 마음으로
그런 자리에서 항상 걸쳐있을 뿐
이런 다음에도
또 다른 계절에도
이제는 내가 있을 곳을 찾을 때
브로콜리 너마저, “환절기” 中
<졸업>이 발매된 지난 주는 유난히 추웠다.
10월에 얼음이 관측된 것은 7년 만이라는 뉴스다.
서늘한 날이 없던 것처럼
그렇게 새로운 계절은 온다.
또 다른 계절이다.

출처 : 브로콜리 너마저 홈페이지
2009년 5월 25일자, 브로콜리 너마저 홈페이지 대문에 올라온, 노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의 가사. 이 노래는 지난 4월 22일 발매된 두 번째 데모 “잔인한 4월”의 2번 트랙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미선이의 느낌이 난다. 이번 데모는 애초에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까? 어쨌든, 2009년 5월의 끄트머리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해주는 가사가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소개한다.
덧붙임 : 처음 올라왔을 때는 지금처럼 대구를 좌우에 배치한 편집은 아니었다. artwork를 맡고 있는 inni씨의 작품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