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Posts Tagged ‘후배’

너를 원망했다.

May 5th, 2010 4 comments

며칠간 지친 상태였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야근, 지난 주말도 매일 출근했었다. 어제도 역시 매우 바빴지만 그래도 오늘이 어린이날이니까, 가까스로 7시 30분경 업무를 끝내고 퇴근했다. 친구와 술을 한 잔 할까, 그냥 집에 갈까 고민하는데 전화가 왔다. 모교에 리크루팅을 갔던 지난 주의 어느날 저녁, 유쾌한 분위기에서 함께 술 한 잔 했던 후배 중 한 명, H가 다른 세상으로 떠났단다. 하릴없이 후배의 빈소라는 현대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였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녁 8시가 되기 전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듣기론 등교하다가 쓰러졌다는데… 수업이 없어서 늦게 학교에 간 걸까? 빈소에는 영정도 없었고, 가족인지 직원인지 모를 사람들만 몇 명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빈소 앞에 고등학교 친구로 보이는 사람 몇 명이 울고 있었지만, 그의 죽음을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난 그의 죽음을 증거불충분으로 기각해버렸다. 그래서 “이런 씨발. 이런 지랄같은 뻥을 치나”라고 얘기하며 뒤돌아 서는데, 형님께서 후배의 영정을 들고 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때부터 그 자리에 와 있던 모두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나도 눈물이 나왔지만, 다른 후배들을 위로해줘야 할 나까지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술취한 듯 장례식장을 나와 건물 앞에 기네스북에라도 오를 기세로 줄담배를 폈다.

시간이 지나고 후배들이 왔다. 조문을 하러 들어가서는, 하나같이 울면서 나온다. 토닥토막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녀들이 물었다. “3일장 아닌가요? 왜 발인이 내일이예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이 먼저 죽기 때문에, H의 경우와 같은 악상은 죄인으로 간주해 장례절차가 빠르다…라고 설명했다. 악상을 당한 상주, 아버님께선 내가 도착하던 순간부터 내가 빈소를 나오던 시간까지 계속 통곡하셨다. 지난 2월 H의 어머님을 잃었기에 더욱 슬프셨으리라. 슬픔이 설움이 되고 설움이 다시 슬픔이 되어 울음이 리드미컬하게 곡소리로 변하는 것을, 삼십년만에 처음 눈으로 목격했다. 몸도 피곤하고, 아버님의 모습을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두 시간쯤 머무르다 빈소를 나왔다.

죄스럽게도 부모님보다 먼저 죽어서 우리에게 자신을 추모할 시간을 채 하루도 주지 않는 H를,
내가 사랑하는 후배들을 펑펑 울린 H를,
휴무일 전날 괴로움과 슬픔에 잠 못 이루게 만든 H를,
집으로 들어오면서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래도 지난 주 우리가 학교에서 만나 즐겁게 얘기를 하던 그 모습을 남긴 채 떠나서 다행이다.
우린 선‧후배 관계지만 어차피 서로를 친구처럼 생각했으니, 내 원망따위 으레 그랬듯이 무시하면 좋겠다.
다른 세상이 어떤지는 나는 모르겠지만, 거기서도 네가 좋아하던 언어학을 실컷 공부하며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Rest in Peace, H.

Tag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