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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이름으로

March 17th, 2010 6 comments

나는 자전거를 타는데
발을 굴리면서
왜 트럭은 먼지를 일으키고
승용차는 저리도 검은가 생각하는데
바퀴들이 눈 같고 입 같다
나는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당신에게 조금 더 많은 말을 하고
가끔은 어깨나 팔꿈치를 툭툭 쳐보기로 할까
말을 하면서 마음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음을
선물처럼 줄 수 있다면 좋겠지
더 자주 더 열심히 생각한다는 것이
당신에게 위로가 될까
위로의 끝에 새로운 이름이 고개를 들까

우리는 서로 다른 속도로 취하고
가로등이 두 개로 세 개로 무너지고
모서리가 둥글어지고
우리는 같은 이름으로 자전거를 타자
바퀴를 굴리면 쏟아지는 달콤한 풍경들이
우리를 지울 때까지
우리의 이름이 될 때까지

이근화, 「우리는 같은 이름으로」, 『우리들의 진화』(문학과 지성사, 2009), pp.116~117

오늘, 프라이버시에 위협을 느끼고 쓰지 않는 내 Google Buzz를 우리 회사의 차장님 한 분이 팔로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Buzz 사건이 아니더라도 요 몇 주간 이 블로그를 없앨까 이름을 바꿀까 고민했었다.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건 2004년부터 쌓아온 나의 ‘log’가 아까워서였다.

야근을 하고 있던 밤 10시경, 20일에 피지로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인 후배가 메신저로 보내준 사이클론의 피지 강타에 따른 재난사태 선포 뉴스를 보며, 왜인지 문득 이근화의 시가 떠올랐다. ‘우리’를 ‘비인칭 또는 시뮬라크르’라 명명한 권말의 해설(이광호)을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도 그가 맞거나, 내가 맞거나, 모두 틀렸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시를 읽는데 정답이 있을까. 어쨌든 우리가 0과 1의 세상에서 만나고 있는 관계로 ‘당신의 어깨나 팔꿈치를 툭툭 쳐’ 볼 수는 없지만, ‘당신에게 좀 더 많은 말을 하고’ ‘말을 하면서 마음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음을 선물처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의 인생이 평행선에 놓여있지 않았기에 우리는 만났다.
우리는 다른 속도로 살고 다른 꿈을 꾸고 있지만,
당신에게 내가 위로가 되고 나에게 당신이 위로가 되고,
그 위로의 끝에 ‘우리’의 이름이 새로이 생겨났으면 한다.

그러려면, 좀 더 많은 말을 해야 될테니 자주 만나자. 댓글들도 좀 달아주시고.

말없는 등으로 기대고 나눈다

September 21st, 2009 4 comments

나는 트렌디한남 따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대세에 따라 블로그를 해외로 이전했다. 아무래도 가입형 블로그는 이제 답답해서 못 쓸 것 같아서, 그리고 이전의 서버였던 미리내의 서비스가 다소 불만이었기에 호스팅 서버를 해외서비스인 Media Temple로 옮겼다. 국내의 서비스가 좋은 호스팅서비스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서비스는 대만족이다. 그러나, 한글로 된 매뉴얼이 없는 관계로 익숙해지기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사실 7월말에 이전을 시작하여 9월 말에 완료한 데는 영어의 압박이 컸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데이터베이스(MySQL)의 이전이었는데, phpMyAdmin의 버전이 달라 UTF-8 인코딩이 깨져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해도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아예 과거의 블로그는 수작업으로 천천히 옮기고 새로 블로그를 생성하려 했었다. 다행히 8con.net으로 유명한 8con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셔서 삽질을 면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한 없는 감사를.

지난 번 미국 출장 결과를 보고하면서 같이 갔던 계열사 일행이 Web 2.0에 대해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때부터 뭔가 위기감을 느꼈는데, 최근에는 Twitter의 열풍 때문인지 사내 KM에 오만가지 웹서비스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나는 중학교 때부터 회사까지 아이디 또는 닉이 모두 동일하므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회원제 사이트는 일제 정리를 할 예정이고 이 블로그는 폭파 1순위이겠지만, 나는 이 블로그의 몇 안 되는 구독자 분들께 말도 안되는 약속을 해 버렸기 때문에 블로그는 없앨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운영중인 블로그 등과 가입된 모든 사이트에서 ID 혹은 닉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으니… 이 곳도 예외는 아니다.

(임시)이름을 뭘로 할까 하다가 ‘말없는 등으로 기대고 나눈다’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고, 올해도 포스팅에 한 번 등장하셨던 바 있는 백무산 시인의 시 「침묵」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감히 나 같은 인간이 인용할 시는 아니지만, 난 개념이 없으니까…는 아니고… ^^a
입보다는 등으로 ‘말’하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이라고 해 둡시다.

나무를 보고 말을 건네지 마라
바람을 만나거든 말을 붙이지 마라
산을 만나거든 중얼거려서도 안된다
물을 만나더라도 입다물고 있으라
그들이 먼저 속삭여올 때까지

이름 없는 들꽃에 이름을 붙이지 마라
조용한 풀밭을 이름 불러 깨우지 마라
이름 모를 나비에게 이름 달지 마라
그들이 먼저 네 이름을 부를 때까지

인간은
입이 달린 앞으로 말하고 싸운다
말없는 등으로 기대고 나눈다

백무산 – 「침묵」

Dead Link 혹은 death on line

February 15th, 2009 12 comments

예전 포스트에 가끔식 댓글을 달아주시는 블로거가 한 분 생겼다. 덕분에 답글을 달면서 예전에 썼던 포스트들을 종종 읽곤 한다. 대부분은 하릴없는 헛소리들이지만, 그 포스트를 쓴 당사자이다 보니 그 헛소리들에 얽힌 오만가지 기억들이 떠올라서 혼자 키득키득하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외부링크의 대부분이 죽어있다는 점. 경우에 따라서는 읽는 맛을 살리기 위해서 링크를 열어봐야만 충분히 의미가 통하도록 쓴 문장들도 있는데, 이제는 나조차도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데드링크의 종류는 다양하다. 당시 개봉했던 영화의 홍보 홈페이지가 사라진 경우는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 링크들은 , IMDbKMDb로 링크를 수정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블로그의 주인장이 다른 블로그 서비스나 블로그툴로 이사한 경우에도 변경된 링크를 찾아서 이어주면 될 일이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블로거가 책을 내면서 컨텐츠가 온라인에서 삭제된 경우에는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하이퍼링크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 뿐, 우리가 연결되었던 흔적은 언제고 서점에서 찾을 수 있을터이니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아쉬운 것은 홈페이지나 설치형 블로그의 계정 자체가 사라진 경우이다. 예전에 보던 익숙한 레이아웃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404 에러 또는 '이 도메인을 사려면 어디로 연락하라'는 메시지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 인기있었던 블로거의 도메인에는 비키니…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묘령의 여성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웹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학계에서는 논문 발표후 종종 인용된 해당 사이트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데드링크가 나는 일에 대한 우려로 학술 프로젝트까지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 데드링크는 업계용어로 '대략난감'이다.

어쨌든 데드링크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설치형 블로그인 WordPress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뭔가 모골이 송연해진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급사한다면 이 블로그는 어떻게 될까? 보통 나는 2년 단위로 호스팅을 연장하니까, 운이 좋으면 블로그는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그 삶을 연장할 것이다. 그 누구의 댓글에도 답글이 달리지 않은 채, 내 아이디 묻힌 블로그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그러다가 계약된 기간이 지나고, 호스팅업체가 배려해주는 몇 주의 시간마저 지나면, 이 블로그는 인터넷의 역사 속으로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얼마 안 되는 블로그의 손님들은 궁금해하겠지. 무슨 일이 생겼을까? 블로그가 재미없어진 걸까? 블로그를 5년 정도 해 오면서 MSN에서 친구신청을 한 사람도 몇 명 있었으니까, 정말 궁금한 사람은 About 페이지에서 나의 MSN ID를 찾아 친구신청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수락할 수 없으니 그저 그걸로 끝일테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잊혀져갈 것이다. 나의 본명으로 살아가는 오프라인에서 살아가는 나의 삶은 이미 장례라는 절차를 통해 끝났겠지만, nomen nescio로 살아가는 온라인에서의 나의 삶은 나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하는 사람이 남아있지 않게 되는 그때 쯤 끝날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이 온라인에서의 죽음인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할머니와 큰아버지의 나이차는 채 열 살이 되지 않는다. 내가 '큰할머니'라고 부르는 할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박을 맞았고, 작은 집의 큰 아들이었던 큰아버지께서는 기제사를 위해 할아버지에게 입적되었다. 큰아버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무공훈장을 받아 돌아오셨고, 대신 남은 평생동안 다리를 조금 절게 되었다. 지지리도 못 살던 동생들은 자식들이 다들 장성하여 노년에 편하게 사는데, 반쯤 미친 큰며느리와 알콜중독으로 자살한 작은 아들, 정신지체로 인해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못한 막내아들 때문에 말년까지 고생하셨다. 재작년 11월, 치매로 1년 이상을 요양원에서 머무르던 큰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는 식사도 제대로 안 하셨다고 한다. 큰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조상에 대한 사대봉사를 빌미로 그렇게도 고생을 시키시더니 마음 속으로는 진정 사랑했던 것일까? 큰어머니의 1주기를 며칠 안 남기고, 큰아버지께서도 눈을 감으셨다.

그래서, 작년 11월 오랜만에 대구에 다녀왔다. 큰아버지라고는 해도 할머니 뻘이니 호상으로 봐도 무방하니까 나는 가급적 웃고자 했다. 할아버지를 잃은,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고 싶었던 조카들을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것이, 한국 근현대사의 수많은 질곡을 체험하다 못해 몸 안에 아로새긴 채 살아왔던 그에 대한 예의-살아계실 때는 반항했으니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빈소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고, 나는 금새 웃음을 감추어야만 했다. 역시나 지금은 데드링크가 되어버린 C의 블로그에서였던가, 바람직한 빈소의 분위기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죽는다면, 사람들이 나의 빈소에 와서 웃었으면 좋겠다. 나의 좋았던 모습은 칭찬하고 나빴던 모습은 욕하면서, 그/녀들과 내가 함께했던 시간들을 3일 동안이나마 추억해줬으면 좋겠다. 발인까지 끝나면 각자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터, 어차피 인생은 공수레공수거인데 웃으면서 떠나보내면 되지 굳이 울며 불며 아쉬워할 필요없지 않은가.

아직은 공식적으로 유언장을 쓸 나이는 아니지만, 언젠가 유언장을 쓰게 되면 기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문구와 함께 블로그에 나의 장례식장을 알리는 포스팅을 하라는 내용-접속하는 방법도 기재하고-을 반드시 넣겠다. 만약에 그때까지 우리가 온라인에서나마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이라면, 조의금 따위는 필요없으니 퇴근길에 잠깐 들러줬으면 좋겠다. 조문객으로 온 블로거들은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일 수도 있지만, 세상은 좁으니 서로 아는 사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빈소에서 건배를 하기는 좀 그러니까, 조심스레 술잔을 건네면서 웃으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야기 속에 불청객처럼 끼어들었던 나의 이야기도 잠시 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직은 젊고 죽음을 이야기하기는 모두가 아직은 창창한 우리에게, 이러한 얘기는 아직 섣부르다 못해 건방져 보이기까지한 얘기일터. 나의 블로거 친구들, 오프라인에서의 삶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온라인에서나마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며 울고 웃으며 싸우고 화해하며 행복하게 지내봅시다.

데드링크 혹은 온라인 죽음일랑 나중에 다시 생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