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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예요

November 5th, 2011 2 comments

어제 있었던 일이다. 퇴근 무렵, 지난 6월까지 나의 팀장님이셨던 부장님께서 지나가다 우리 팀에 잠시 들러 우리 팀에 10월에 배치된 신입사원에게 금요일인데 빨리 퇴근해서 데이트를 하지 왜 아직도 회사에 있냐고 물으셨다. 신입사원이 말했다. “네, 안 그래도 퇴근해서 헤어지는 데이트를 할 예정입니다.” 평소 젊은 세대의 연애세태를 비관적으로 보는 팀장님께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시다가 사귄지 얼마나 됐냐고 물어보셨다. “백일이요.” 팀장님께서는 웃으면서 백일이 사귄거냐고 말씀하시며 다음엔 좋은 여자 만나라고 응원해주셨다.

이어 옆에 앉은 사원에게 “너는?”이라고 물어보셨다. 그 후배는 지난 주 토요일에 헤어졌다. 팀장님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두어번 두드리며 “너는 너무 여자 얼굴만 봐서 매번 헤어지는거야.”라고 하셨다. 맞는 말이니라고 느꼈는지 후배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의 연애행태가 바뀔 것 같진 않다.

이어 나에게도 “너는?”이라고 물어보셨다. 나도, 지지난 주에 잠시 만나던 여성과 그만 만나기로 했다. 팀장님께서는 (여자 얼굴만 보는) 후배를 가리키며 “넌 저 놈처럼 얼굴만 보지는 않으니까 좀 낫다고 해야겠지만, 너는 너만 보니까 저놈보다 더 힘들 것 같다. 차라리 얼굴을 봐라.”라고 하시며 귀가하셨다. 역시 대기업에서 10년 이상 인사팀장을 한 사람은 사람보는 안목이 남다르구나.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연애행태가 바뀔 것 같진 않다. 후배는 계속 예쁜 여자만 찾을 것이고, 나도 계속 나만 보겠지.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언젠가 블로그에 연애소식 또는 결혼소식을 올리게 된다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밖에 모르는 마음을 고쳐먹고 내가 남을 배려하기 시작했거나,
나밖에 모르는 내가 나를 버릴만큼 대단한 여성을 만났거나.

난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예요.


본격적인 마음 Live, Obeg by mgk on Vimeo

난 나밖에 모르는 사람
난 나밖에 모르는 사람
좋아하는 그림은 내가 그린 그림
누구의 대답도 들리지 않네
난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예요
난 나밖에 모르는 사람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 본격적인 마음
(우정모텔, 2011)

Serenade

February 13th, 2011 No comments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앞에 아마도 “소나타”라는 이름의 노래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냥 평범한 동네 노래방과 다른 점은 딱 하나였다. 고등학생들에게는 시간을 두 배로 주는, 은혜로운 주인아저씨가 노래방을 운영하셨다는 것. 그래서 수능모의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우리는 언제나 그 노래방에 갔다. 지금은 음악계통(?)의 일을 하고 있는 친구 J를 비롯하여 내 친구들은 우연히도 모두대부분 가수 뺨치는 가창력을 가지고 있었고, 나만 홀로 음치였기에 아이들은 내 노래를 좋아했다. 내가 노래를 마치면 그들은 나에게,
“너에게는 락을 창으로 부르고, 발라드를 랩으로 부르며, 댄스를 포크로 부르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세레나데하면 Romeo and Juliet이 아닐까 싶다.

대학교 2학년때 쯤이었을까? J와 술을 마시다가 그의 작곡과 노래실력이 부럽다면서 비단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레나데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떤 여성에게 세레나데를 부르며 고백하는 건 남성들의 로망이지 않겠냐고 얘기했다. 이곳에 J의 대답을 적는 건 그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고, 어쨌든 나는 아직도 그 로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발라드를 랩으로 부르는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여성이 생기면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대신 공연을 같이 보러가곤 했다.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사라 브라이트만 그리고 가장 최근엔 브로콜리 너마저까지, 그/녀들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여러 아티스트들이 나를 대신하여 기꺼이 무사이 여신이 되어주었다.

역시 소나타노래방 멤버중 한 명인 친구 S는 적어도 발라드를 발라드로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보다는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가창력에 있어 간신히 평균 정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녀석인데, 여자친구에게 노래로 프로포즈를 했다(반주는 J의 몫이었다). 지금은 제수씨가 된 S의 여자친구는 당시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졌다. 그날 프로포즈 이벤트의 사진을 찍으며, 만약 누군가에게 프로포즈를 하게 된다면 미완성의 노래에 의미를 부여하여 내가 보낸 사고언어의 전음(傳音)을 듣는 사람일테니 노래실력보다는 그 의미를 들어줄 것이고, 그러므로 세레나데를 불러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이 없는 것은 여전했는데, 며칠 전 퇴근길에 Sagitta의 노래를 듣다가 “이 노래다!”라고 외쳤다(Sagitta는 사수자리의 라틴어 이름인데, 멤버 이우성씨와 이정은씨가 부부 사이라는 걸 감안하면 큐피드를 염두에 두고 밴드 이름을 지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프로포즈를 하고 있는 식당에 우연히 오신다면 여러분도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애인도 없는 마당에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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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안에 들어와
너는 집을 짓고 살고 있구나
어느 새 내 마음의 숲 속에
너는 미로 같은 길을 내고 들어가
그 옛날 그림 속 나는 한 없이 오는 것 같아

어느 날 내 안에 들어와
너는 별이 되어 빛을 내고 있구나
어느새 내 안의 우주가
너의 중력 속에 빨려 들어가
아찔한 속력에 나는 한 없이 오는 것 같아

사랑해 그리고 사랑해
가끔 문을 열고 밤을 거닐다
세상 밖 나를 다시 만나면
수 많은 모험담을 전해주오

너의 얘기 너의 얘기 너의 얘기
어느 날 내 안에 들어와
어느새 내 마음의 숲속에
어느 날 내 안에 들어와
어느새 내 안의 우주가
사랑해 그리고 사랑해

Sagitta – 너의 이야기
(Hello World, 2005)

“착할께” 혹은 Y2K, BBK, Oki와 같은 종말의 단어들

September 27th, 2010 No comments

※ 이 포스트는 어떤 이에게는 <옥희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며, 사실은 그 영화와 별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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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길었던 추석연휴가 끝나간다. 월요일과 금요일을 쉬었으니, 내리 아흐레를 쉬었다. 매번 명절이 끝날 무렵이면 으레 그렇듯이 오늘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모여서 서너시간 정도 포커를 쳤다. 돈은 조금 잃었지만, 오랜만에 시답잖은 헛소리를 하며 웃었으니 그걸로 좋다. 지난 설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올 한 해를 지나면서 결혼한 친구들이 대부분이 되어 같이 저녁까지 먹진 못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미혼인 M과 나는 근처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오랜만에 만난 김에 얘기를 좀 더 하려고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 우리가 앉았던 자리는 우연히도 3년 전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우리가 매주 앉았던 자리였다. 그 당시에 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주말도 없이 1주일에 7일을 출근하고 있었고, M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매주 일요일 9시경, 주말야근을 마치고 퇴근한 나와 성당미사를 마친 M은 그 자리에서 만나 각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대해 주로 얘기했었다. 진보정당에도 관심이 많았던 나와 달리 M은 보수정당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우리의 주된 주제는 지금은 여당이 되어버린 당의 대통령 후보의 경선이었다. 경선결과 우리가 공통적으로 결사반대했던 경선후보가 대선후보로 결정되었고 그 겨울이 끝날 무렵, 대통령이 되었다.

M과 나의 대학입학후 첫 연애는 시작한 시기는 달랐지만, 공교롭게도 끝난 시기가 비슷했다. 1999년의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 우리는 커피전문점이 아니라 술집에서 만나 매일같이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들, ‘상처가 아물고, 덧나고, 다시 아물면 마음에도 굳은 살이 박혀서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와 같은 아포리즘들을 넋두리처럼 얘기하며 서로를 위로했었다. 어찌나 많은 얘기를 했는지 이 시기가 지난 이후 우리는 종종 애인이 있냐고 묻는 것 이상의 연애얘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안 봐도 비디오안 들어도 오디오니까. 그리고 우리의 사랑과 연애에는 아무런 해악을 미치지 않은 Y2K가 상징하는 세기말에 대해 탄식했다. 3년 전에는 우리의 삶에는 아무런 해악을 미치지 않은 BBK가 상징하는, 도덕교과서에나마 남아 있는 ‘정의’라는 단어의 종말에 대해 탄식했다. M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나보다. 우리가 태어난 세기의 끝도 보고, 도덕교과서에나마 남아 있던 ‘정의’의 끝도 본 마당에 마땅히 할 얘기가 없어진 우리는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각자의 사랑과 연애에 대해 얘기했다.

메가박스 삼성점에서 <옥희의 영화>를 지난 금요일 20시 40분에 본 나는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로 “학교에 무슨 약 탔나봐? 다들 나 좋다고 난리다. 난리.”를 꼽았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영화를 지난 토요일 같은 시간에 본 M은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로 “착할께”를 꼽았다. 이어 M이 지난 여름에 교제한 10살이나 어린 여성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M은 우리가 더 이상 연애얘기를 하지 않게된 이후의 자신의 연애가 꼭 <옥희의 영화>나 다른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처럼,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결국 대부분이 비슷한 연애의 변주였다고 얘기했다(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현재 교제중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패로 끝났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교제한 여성은 그렇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고. 최근의 그녀가 그동안 만났던 여성들과 크게 차이가 나는 건 나이 밖에 없으니까, 이래서 다른 남자들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나 보다고 덧붙였다. 나는 M의 그 말을 이렇게 이해했다. 진구가 옥희와 섹스를 마치고 난 뒤 내뱉는 “착할께”는 홍상수 영화의 남자주인공들이나 할 법한 “착할께”, 말하자면 우리 일상의 “오빠 믿어?”일테지만, 우리 일상은 홍상수 영화와는 다르니까(혹은 우리는 홍상수의 페르소나들처럼 대놓고 욕망을 드러내면서 살지 않으니까) 때로는 “착할께”라는 말도 필요한 것이 아닐가. “착할께”류의 표현이 서로에게 진실로 여겨졌기에 M에게는 최근의 연애가 좋았던 것 같다. ‘감독님 영화는 감독님 이야기’인 것처럼 결국 우리가 본 영화는 우리 이야기로 해석되는 거니까. 그렇다면 내가 고른 명대사는 나의 염원은 담은 것일까? :-)

연애, 사랑 혹은 홍상수에 대한 얘기 끝에 잠깐 음악얘기를 하다가 커피전문점을 나와 헤어졌다. 갑자기 <옥희의 영화>의 영화 속의 액자 <옥희의 영화>에서 옥희가 나이 든 남자에게 말한 “빨리 나이 들고 싶어요.”라는 말이 어쩌면 나이 든 남자에게는 Y2K나 BBK같은 것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이 든 남자는 겨울 아차산의 화장실 앞에서 뒤돌아 선 것이 아닐까. 굳은 살이 박혀서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도 결국 그 안에는 세포가 존재하고 피가 흐르니까, 우리는 손에 닿는 좋은 느낌과 싫은 느낌을 굳은 살이 있건 말건 느낄 수 있다. 나이 든 남자부터 진구까지 혹은 우리 부모님 뻘의 중년부터 내 또래의 친구들까지 ‘굳은 살이 박혀서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된’ 현실적인 우리에게 “빨리 나이 들고 싶어요.”라는 불가능한 사실에 대한 소망으로 위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착할께”라는 건 (설사 거짓이 조금 섞여있다하더라도) 청자의 입장에선 언어로 유형화된 약속, 그리고 화자의 입장에선 자기 자신에 대한 (자그마치!) 정언명령. 나는 그동안 못 지킬지도 모르는 약속을 왜 하냐고 말해왔지만, 설사 못 지키게 된다하더라도 약속조차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게는 물론 나 스스로에게 더욱 나쁘다고(여전히 자기중심적), 드디어(한숨), 생각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

말해주세요
그대도 저를 좋아하신다고
거짓말이래도 그게 중요한가요

9와 숫자들, “말해주세요”中

자, 이제 중요한 것 하나. 옥희의 교훈은 나에게 Y2K, BBK처럼 Oki도 나에게 어떤 것의 종말을 상징하는 단어가 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