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포스트는 어떤 이에게는 <옥희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며, 사실은 그 영화와 별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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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길었던 추석연휴가 끝나간다. 월요일과 금요일을 쉬었으니, 내리 아흐레를 쉬었다. 매번 명절이 끝날 무렵이면 으레 그렇듯이 오늘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모여서 서너시간 정도 포커를 쳤다. 돈은 조금 잃었지만, 오랜만에 시답잖은 헛소리를 하며 웃었으니 그걸로 좋다. 지난 설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올 한 해를 지나면서 결혼한 친구들이 대부분이 되어 같이 저녁까지 먹진 못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미혼인 M과 나는 근처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오랜만에 만난 김에 얘기를 좀 더 하려고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 우리가 앉았던 자리는 우연히도 3년 전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우리가 매주 앉았던 자리였다. 그 당시에 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주말도 없이 1주일에 7일을 출근하고 있었고, M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매주 일요일 9시경, 주말야근을 마치고 퇴근한 나와 성당미사를 마친 M은 그 자리에서 만나 각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대해 주로 얘기했었다. 진보정당에도 관심이 많았던 나와 달리 M은 보수정당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우리의 주된 주제는 지금은 여당이 되어버린 당의 대통령 후보의 경선이었다. 경선결과 우리가 공통적으로 결사반대했던 경선후보가 대선후보로 결정되었고 그 겨울이 끝날 무렵, 대통령이 되었다.
M과 나의 대학입학후 첫 연애는 시작한 시기는 달랐지만, 공교롭게도 끝난 시기가 비슷했다. 1999년의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 우리는 커피전문점이 아니라 술집에서 만나 매일같이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들, ‘상처가 아물고, 덧나고, 다시 아물면 마음에도 굳은 살이 박혀서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와 같은 아포리즘들을 넋두리처럼 얘기하며 서로를 위로했었다. 어찌나 많은 얘기를 했는지 이 시기가 지난 이후 우리는 종종 애인이 있냐고 묻는 것 이상의 연애얘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안 봐도 비디오안 들어도 오디오니까. 그리고 우리의 사랑과 연애에는 아무런 해악을 미치지 않은 Y2K가 상징하는 세기말에 대해 탄식했다. 3년 전에는 우리의 삶에는 아무런 해악을 미치지 않은 BBK가 상징하는, 도덕교과서에나마 남아 있는 ‘정의’라는 단어의 종말에 대해 탄식했다. M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나보다. 우리가 태어난 세기의 끝도 보고, 도덕교과서에나마 남아 있던 ‘정의’의 끝도 본 마당에 마땅히 할 얘기가 없어진 우리는 21세기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각자의 사랑과 연애에 대해 얘기했다.
메가박스 삼성점에서 <옥희의 영화>를 지난 금요일 20시 40분에 본 나는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로 “학교에 무슨 약 탔나봐? 다들 나 좋다고 난리다. 난리.”를 꼽았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영화를 지난 토요일 같은 시간에 본 M은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로 “착할께”를 꼽았다. 이어 M이 지난 여름에 교제한 10살이나 어린 여성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M은 우리가 더 이상 연애얘기를 하지 않게된 이후의 자신의 연애가 꼭 <옥희의 영화>나 다른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처럼,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결국 대부분이 비슷한 연애의 변주였다고 얘기했다(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현재 교제중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패로 끝났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교제한 여성은 그렇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고. 최근의 그녀가 그동안 만났던 여성들과 크게 차이가 나는 건 나이 밖에 없으니까, 이래서 다른 남자들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나 보다고 덧붙였다. 나는 M의 그 말을 이렇게 이해했다. 진구가 옥희와 섹스를 마치고 난 뒤 내뱉는 “착할께”는 홍상수 영화의 남자주인공들이나 할 법한 “착할께”, 말하자면 우리 일상의 “오빠 믿어?”일테지만, 우리 일상은 홍상수 영화와는 다르니까(혹은 우리는 홍상수의 페르소나들처럼 대놓고 욕망을 드러내면서 살지 않으니까) 때로는 “착할께”라는 말도 필요한 것이 아닐가. “착할께”류의 표현이 서로에게 진실로 여겨졌기에 M에게는 최근의 연애가 좋았던 것 같다. ‘감독님 영화는 감독님 이야기’인 것처럼 결국 우리가 본 영화는 우리 이야기로 해석되는 거니까. 그렇다면 내가 고른 명대사는 나의 염원은 담은 것일까? :-)
연애, 사랑 혹은 홍상수에 대한 얘기 끝에 잠깐 음악얘기를 하다가 커피전문점을 나와 헤어졌다. 갑자기 <옥희의 영화>의 영화 속의 액자 <옥희의 영화>에서 옥희가 나이 든 남자에게 말한 “빨리 나이 들고 싶어요.”라는 말이 어쩌면 나이 든 남자에게는 Y2K나 BBK같은 것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이 든 남자는 겨울 아차산의 화장실 앞에서 뒤돌아 선 것이 아닐까. 굳은 살이 박혀서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도 결국 그 안에는 세포가 존재하고 피가 흐르니까, 우리는 손에 닿는 좋은 느낌과 싫은 느낌을 굳은 살이 있건 말건 느낄 수 있다. 나이 든 남자부터 진구까지 혹은 우리 부모님 뻘의 중년부터 내 또래의 친구들까지 ‘굳은 살이 박혀서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된’ 현실적인 우리에게 “빨리 나이 들고 싶어요.”라는 불가능한 사실에 대한 소망으로 위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착할께”라는 건 (설사 거짓이 조금 섞여있다하더라도) 청자의 입장에선 언어로 유형화된 약속, 그리고 화자의 입장에선 자기 자신에 대한 (자그마치!) 정언명령. 나는 그동안 못 지킬지도 모르는 약속을 왜 하냐고 말해왔지만, 설사 못 지키게 된다하더라도 약속조차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게는 물론 나 스스로에게 더욱 나쁘다고(여전히 자기중심적), 드디어(한숨), 생각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
말해주세요
그대도 저를 좋아하신다고
거짓말이래도 그게 중요한가요
9와 숫자들, “말해주세요”中
자, 이제 중요한 것 하나. 옥희의 교훈은 나에게 Y2K, BBK처럼 Oki도 나에게 어떤 것의 종말을 상징하는 단어가 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