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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꼭 별이 되게 해 주세요.

November 7th, 2010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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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홈페이지

9회말 주자 만루, 투 아웃 2-3 풀카운트의 긴박한 상황. 점수는 4대 7로 뒤지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획.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던진 시속 150킬로미터 강속구를 그대로 받아넘긴다. 순간 정적. 초록색 그라운드, 까만 밤하늘을 가로질러 백스크린을 그대로 맞히는 역전만루홈런! 주인공은 바로 나, 그 이름도 길고 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찬양하라. 위대한 그 이름 달빛요정!
아니,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3회에 역전만루홈런을 치고도 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야구는 한 게임으로 승부를 내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걸, 인생도 단 한 방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오늘도 묵묵히 나무 배트를 들고 공을 칠 것이다. 공을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면서 살 것이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알루미늄 배트를 줄까, 나무 배트를 줄까?」, 『인생기출문제집2』 (북하우스, 2004), pp.265~266

11월 6일 아침, 이진원씨 아니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부고를 트위터에서 보았다. 사실 그의 본명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불과 사나흘 전이었는다. 갑자기 쓰러졌으니 갑자기 벌떡 일어났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스끼다시 내 인생”이 말해주는 세상의 슬픈 진리는 ‘똑똑한 명문대생 남성’이나 ‘예쁜 여성’이 아니면 ‘사시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달빛요정같은 뚱뚱한 아저씨가 스포츠신문 1면에 나오려면 2010년의 이대호처럼 (도루빼고) 타격 전 부문 1위 정도는 해야되는 세상이다. ‘사시미’로 점지받지 못한 우리들은 그래도 싸이영상을 타서 스포츠신문 1면에 나와 보겠다고 ’20승 박찬호’를 꿈꾸거나, 이대호가 되어서 스포츠신문 1면에 나와 보겠다고 ‘역전만루홈런’을 노린다. 이런 세상에서,

묵묵히 나무 배트를 들고 공을 쳤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는 어쩌면 몰락을 선택한 자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가끔씩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생각하게 해주셨다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그냥 소박하게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덕분에 이따금 내 삶이 행복한가 반문할 수 있었기에 좋았다 정도로 해 두자. 빈소에는 가지 않으려 했는데, death on line에 대해 예전에 내가 올렸던 글을 떠올려보니, 그도 오프라인의 빈소에 한 번 들러주길 원할 것 같아 지금 가보려고 한다.

별이
별과 함께 별자리를 만든 건

고독했던 인류들이
불안했던 인류에게 남긴
위로의 한 말씀

김소연, 「위로」 中, 『눈물이라는 뼈』 (문학과지성사, 2010)

달빛요정이 죽으면 달이 될까 요정이 될까 궁금해 하다가, 얼마 전 읽은 시가 떠올랐다. 달빛요정이 죽어서 별이 되지는 않을테니 많이 외로우실 것 같다. 신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혹시 신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신이 아니어도 빅뱅이든 외계인이든 뭐든 있을테니 소원을 빈다. 여기에 소원을 빌테니 꼭 들어주세요.

이 분이 ‘덤벼라 건방진 세상아’라고 윽박지르면서 노래를 부를 땐, 2002년 내셔설리그 싸이영상 수상자 24승 왼손투수 랜디 존슨이 광속구를 던질 때보다 훨씬 더 멋있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그런 대단한 락스타였으니까 죽어서 꼭 별이 되게 해 주세요. 기왕이면 물고기자리에 넣어주시길. 사시미가 될 수 있게.

Mercy, Mercy, Mercy!

July 24th, 2010 No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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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know, sometimes we’re not prepared for adversity. When it happens, sometimes we’re caught short. We don’t know exactly how to handle it, when it comes up. Sometimes we don’t know just what to do when adversity takes over. And I have advice for all of us. I got it from my pianist Joe Zawinul, who wrote this tune, and it sounds like what you’re supposed to say when you have that kind of problem. It’s called ‘Mercy, Mercy, Mercy!’

Cannonball Adderley, Introduction of “Mercy, Mercy, Mercy!” live at “The Club

“Mercy, Mercy, Mercy!”를 수없이 되뇌이고 있는 주말. 삶은 계속 꼬여있고, 일은 넘쳐나고, 사촌누나가 54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너를 원망했다.

May 5th, 2010 4 comments

며칠간 지친 상태였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야근, 지난 주말도 매일 출근했었다. 어제도 역시 매우 바빴지만 그래도 오늘이 어린이날이니까, 가까스로 7시 30분경 업무를 끝내고 퇴근했다. 친구와 술을 한 잔 할까, 그냥 집에 갈까 고민하는데 전화가 왔다. 모교에 리크루팅을 갔던 지난 주의 어느날 저녁, 유쾌한 분위기에서 함께 술 한 잔 했던 후배 중 한 명, H가 다른 세상으로 떠났단다. 하릴없이 후배의 빈소라는 현대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였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녁 8시가 되기 전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듣기론 등교하다가 쓰러졌다는데… 수업이 없어서 늦게 학교에 간 걸까? 빈소에는 영정도 없었고, 가족인지 직원인지 모를 사람들만 몇 명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빈소 앞에 고등학교 친구로 보이는 사람 몇 명이 울고 있었지만, 그의 죽음을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난 그의 죽음을 증거불충분으로 기각해버렸다. 그래서 “이런 씨발. 이런 지랄같은 뻥을 치나”라고 얘기하며 뒤돌아 서는데, 형님께서 후배의 영정을 들고 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때부터 그 자리에 와 있던 모두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나도 눈물이 나왔지만, 다른 후배들을 위로해줘야 할 나까지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술취한 듯 장례식장을 나와 건물 앞에 기네스북에라도 오를 기세로 줄담배를 폈다.

시간이 지나고 후배들이 왔다. 조문을 하러 들어가서는, 하나같이 울면서 나온다. 토닥토막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녀들이 물었다. “3일장 아닌가요? 왜 발인이 내일이예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이 먼저 죽기 때문에, H의 경우와 같은 악상은 죄인으로 간주해 장례절차가 빠르다…라고 설명했다. 악상을 당한 상주, 아버님께선 내가 도착하던 순간부터 내가 빈소를 나오던 시간까지 계속 통곡하셨다. 지난 2월 H의 어머님을 잃었기에 더욱 슬프셨으리라. 슬픔이 설움이 되고 설움이 다시 슬픔이 되어 울음이 리드미컬하게 곡소리로 변하는 것을, 삼십년만에 처음 눈으로 목격했다. 몸도 피곤하고, 아버님의 모습을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두 시간쯤 머무르다 빈소를 나왔다.

죄스럽게도 부모님보다 먼저 죽어서 우리에게 자신을 추모할 시간을 채 하루도 주지 않는 H를,
내가 사랑하는 후배들을 펑펑 울린 H를,
휴무일 전날 괴로움과 슬픔에 잠 못 이루게 만든 H를,
집으로 들어오면서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래도 지난 주 우리가 학교에서 만나 즐겁게 얘기를 하던 그 모습을 남긴 채 떠나서 다행이다.
우린 선‧후배 관계지만 어차피 서로를 친구처럼 생각했으니, 내 원망따위 으레 그랬듯이 무시하면 좋겠다.
다른 세상이 어떤지는 나는 모르겠지만, 거기서도 네가 좋아하던 언어학을 실컷 공부하며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Rest in Peace,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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