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꼭 별이 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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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홈페이지
9회말 주자 만루, 투 아웃 2-3 풀카운트의 긴박한 상황. 점수는 4대 7로 뒤지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획.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던진 시속 150킬로미터 강속구를 그대로 받아넘긴다. 순간 정적. 초록색 그라운드, 까만 밤하늘을 가로질러 백스크린을 그대로 맞히는 역전만루홈런! 주인공은 바로 나, 그 이름도 길고 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찬양하라. 위대한 그 이름 달빛요정!
아니,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3회에 역전만루홈런을 치고도 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야구는 한 게임으로 승부를 내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걸, 인생도 단 한 방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오늘도 묵묵히 나무 배트를 들고 공을 칠 것이다. 공을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면서 살 것이다.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알루미늄 배트를 줄까, 나무 배트를 줄까?」, 『인생기출문제집2』 (북하우스, 2004), pp.265~266
11월 6일 아침, 이진원씨 아니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부고를 트위터에서 보았다. 사실 그의 본명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불과 사나흘 전이었는다. 갑자기 쓰러졌으니 갑자기 벌떡 일어났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스끼다시 내 인생”이 말해주는 세상의 슬픈 진리는 ‘똑똑한 명문대생 남성’이나 ‘예쁜 여성’이 아니면 ‘사시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달빛요정같은 뚱뚱한 아저씨가 스포츠신문 1면에 나오려면 2010년의 이대호처럼 (도루빼고) 타격 전 부문 1위 정도는 해야되는 세상이다. ‘사시미’로 점지받지 못한 우리들은 그래도 싸이영상을 타서 스포츠신문 1면에 나와 보겠다고 ’20승 박찬호’를 꿈꾸거나, 이대호가 되어서 스포츠신문 1면에 나와 보겠다고 ‘역전만루홈런’을 노린다. 이런 세상에서,
묵묵히 나무 배트를 들고 공을 쳤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는 어쩌면 몰락을 선택한 자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가끔씩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생각하게 해주셨다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그냥 소박하게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덕분에 이따금 내 삶이 행복한가 반문할 수 있었기에 좋았다 정도로 해 두자. 빈소에는 가지 않으려 했는데, death on line에 대해 예전에 내가 올렸던 글을 떠올려보니, 그도 오프라인의 빈소에 한 번 들러주길 원할 것 같아 지금 가보려고 한다.
별이
별과 함께 별자리를 만든 건고독했던 인류들이
불안했던 인류에게 남긴
위로의 한 말씀김소연, 「위로」 中, 『눈물이라는 뼈』 (문학과지성사, 2010)
달빛요정이 죽으면 달이 될까 요정이 될까 궁금해 하다가, 얼마 전 읽은 시가 떠올랐다. 달빛요정이 죽어서 별이 되지는 않을테니 많이 외로우실 것 같다. 신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혹시 신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신이 아니어도 빅뱅이든 외계인이든 뭐든 있을테니 소원을 빈다. 여기에 소원을 빌테니 꼭 들어주세요.
이 분이 ‘덤벼라 건방진 세상아’라고 윽박지르면서 노래를 부를 땐, 2002년 내셔설리그 싸이영상 수상자 24승 왼손투수 랜디 존슨이 광속구를 던질 때보다 훨씬 더 멋있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그런 대단한 락스타였으니까 죽어서 꼭 별이 되게 해 주세요. 기왕이면 물고기자리에 넣어주시길. 사시미가 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