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

May 7th, 2011 No comments

오늘내일은 어버이날. 겸사겸사 오늘 점심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우리 가족, 동생 내외 총 7명이 교외의 샤브샤브집에서 식사를 했다. 어버이날 밥값은 중간어버이가 내는 것이라는 외할아버지의 지론에 따라 어머니께서 결제하셨다. :)

밥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데 동생이 할머니 핸드폰을 보다가 “역시 금슬이 좋으시다니까.”라고. 외할머니의 효자폰 바탕화면은 두 분의 커플사진! 외할아버지 핸드폰에는 외할머니 독사진이었다. 아빠도 질세라 “장인어른 저도 집사람이 배경화면이예요. 누누히 말하지만 사위 하난 진짜 잘 고르신거예요.”

이런 게 가정의 달에 벌어지는 풍경인거다. 옛말에도 가화만사성이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하지 않았던가! 외할아버지가 흡족해하시며 엄마가 꼭 쥐고 있던 핸드폰을 달라고 하시더니 열아보셨다. “얘 이게 무슨 사진이냐?”

엄마가 고개를 숙이고 말씀하셨다.
“집 앞 개천이요.”
아빠도 고개를 숙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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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를 보고 감동받은 당신이 음악을 ‘더’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March 27th, 2011 No comments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나는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애초에 각자의 매력이 있는 훌륭한 아티스트들을 무대 위에 세운 뒤 (그 방식이 어떤 것이든 간에!) 줄을 세운다는 것이 맘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주 한 주가 지날수록 주말의 프라임 타임에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의 위력을 느끼곤 한다. 그 논의내용의 바람직함을 떠나 뉴스의 댓글에서 트위터의 타임라인에서 엄청나게 회자되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그리고 지난 주엔 급기야 비틀즈의 박스셋 모노와 스테레오를 모두 사고 파산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던 우리 회사의 사람들이 (정말 믿기지 않게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소라 앨범 중에 어느 게 제일 좋아?”, “니가 자주 보는 홍대 락 밴드가 잘 하니 아님 윤도현밴드가 잘 하니?”, (정엽이 떨어지면 나얼이 복수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자)”나얼은 누구야? 정엽보다 잘 해?”, “이소라 실제로도 까칠해?”, “저런 가수들 공연보려면 얼마나 드니?” 질문들은 조악하지만, 그 관심에 놀랐다. 그래서 항상 귀에 이이폰을 꼽고 사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내일 동료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 줄까 고민하다가 정리해보는, <나는 가수다>를 보고 감동받은 당신들에게 던지는 몇 가지 조언들.

더 큰 감동을 느끼는 첫 번째 방법은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그 아티스트를 CD를 사는 방법이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간단한 휴대폰 결제를 거치면 100여곡을 단돈 9,900원에 살 수 있는 간편한 세상이다. 이소라를 예로 들면, 내 주변의 지인들은 멜론에 접속해서 ‘바람이 분다’를 검색해서 그 곡을 다운받아 휴대폰에 넣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소라의 6집 <눈썹달>의 3번 트랙 “바람이 분다”가 가장 좋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당신이 이소라라는 아티스트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면 그 한 곡을 듣고 만족한다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가령 그 앨범의 10번 트랙 “Siren”을 듣고 나면 된장질할 때 스타벅스 로고에서만 세이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이 노래에서 이소라는 허밍만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앨범 전곡 구매’를 누르라는 뜻은 아니다. CD에는 디지털 음원에는 없는 북클릿이 있다. 북클릿은 마치 영화의 엔딩 타이틀처럼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북클릿을 읽으면 “별”의 작곡자를 보며 sweetpea라는 아티스트(더 나아가 deli spice에 대해 알게 된다면 당신은 한국 모던락의 가장 훌륭한 앨범 중 하나를 듣게 될 수도 있다!)에 대해 알게 될 지도 모른다. 또한 당신이 디지털 음원 정액제의 이면을 알게 된다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조금 과장하면 당신이 CD 대신 디지털 음원을 구매함으로써 그 아티스트의 다음 앨범이 안 나오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이 방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당신이 알게 된 바로 그 아티스트 또는 그 아티스의 그 앨범이 알고 보니 One-hit Wonder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80년대 말에 국민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한 번쯤 봤을 수도 있는 장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Michael Bolton의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를 듣고 <Soul Provider> 앨범을 산 누나가 LP를 두 손으로 쪼개는 모습. 그러나 이 포스트에서 다 설명할 수는 없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더 큰 감동을 느끼는 두 번째 방법은 지금 그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예매하는 것이다.
콘서트 때문에 파산할 뻔한 사람으로써 자신있게 얘기하건데 아무리 좋은 음질의 CD도 콘서트에서 느끼는 감동을 줄 수는 없다. 가령 2010년 Grand Mint Festival에서 가을바람을 맞으며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듣던 그 때의 감동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이 <나는 가수다>가 예능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예능이기 때문에 욕하지만, 아무리 까칠한 ‘가수’라도 콘서트에선 팬들을 위한 쇼를 준비하기 때문에 최고의 예능감을 만끽할 수 있다(작년에 내한하셨던 Keith Jarrett이라는 분은 제외. 그 분 공연에서는 기침도 하면 안 된다. 물론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분.). 가령 (요즘 스위스개그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Lucid Fall은 2010년 “새로운 숨결” 공연에서 부산에 이슬람계 재단인 ‘알라고등학교’ 줄여서 ‘알고’가 있다는 드립을 치면서 “알고 있어요”를 부르기 시작했고, 2010년 1월 14일 Green Day 내한공연에 있었다면 Billy Joe가 무대 위에 올라온 팬에게 딥키스를 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이 여중생은 스테이지 다이브한 뒤 분노한 청중에게 밟혔으므로 너무 열받지는 마시라.).

더 큰 감동을 느끼는 세 번째 방법은 리메이크곡의 원곡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이미 <나는 가수다>가 이런 컨셉이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리메이크가 어떤 곡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잘 보여주는 링크(“아름다운 강산”)로 설명을 대신한다. 다만 The Beatles의 노래만은 원곡이 너무나 위대해서 그 어떤 리메이크도 원곡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진리는 알아두시길!

더 큰 감동을 느끼는 네 번째 방법은 아티스트를 스토킹하는 것이다.
가령 현재 한국 인디신에서 가장 걸출한 여성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시와의 아래 공연(?)은 어떤 앨범, 어떤 콘서트에서도 경험할 수 없다. 그 흔한 RSS도 지원하지 않는 시와의 홈페이지를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그녀의 트위터를 팔로잉해야만 볼 수 있는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물론 조금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당신은 시와가 ‘길상사에서’ “길상사에서”를 부르는 모습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시와 – 잘 가, 봄 from RECANDPLAY.NET on Vimeo.

다 쓰고 나서 든 생각인데, 이 블로그에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오고,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으니… 나의 블로그 지인들이 “다 아는 걸 왜 써 놨냐”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연히 <나는 가수다>를 보고 이소라를 알게 되고 윤도현을 알게 된 사람들과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 만난다면, 그리고 <나는 가수다>를 열심히 보는 당신과 보지 않는 내가 훗날 어느 훌륭한 아티스트의 공연장에서 만나 함께 감동을 느낀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른 채 지나치겠지만) 그 소중한 만남을 지켜주기 위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수’들이 일요일 밤에 예능의 진흙탕을 구르고 있는 것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아주 조금은, 좋아하게 되었다.

이 미친 세상에

March 14th, 2011 No comments

Grad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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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이 사진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그보다는 이 노래가 맴돌았다는 표현이 정확할까? 몇 달째, 때론 재밌게 때론 마지못해 줄창 일을 하고 있는데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출근해서 일을 하다가 문득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메었지만 갈 곳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쓰나미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와중에 매스컴이나 트위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개소리(개소리들이 너무나 넘쳐서 세세한 링크는 생략)들을 보며, 처음 앨범을 들을 때는 이해하지 못 했던 덕원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가 보기에 ‘이 미친 세상’은 ‘행복해야 돼’나 ‘잊지 않을께’와 같은 가사를 후렴구로 하기에는 너무나 미쳐서, 이 거친 어구를 후렴구로 만들고 열 네 번이나 반복(하고 방송금지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내우외환’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요즈음 나의 삶, ‘어디쯤 가야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힘의 불균형1) 속에서 어둠이 존재함을 확인해주는 기능 정도만 간신히 해 내고 있는 저 빛 속에 홀로 선 덕원처럼.

짝짓기에나 몰두해 볼까, 이 미친 세상에.

1) 이병률의 시 「길을 잃고 있음에도」에서(넘지 않으려 밟지 않으려 애쓰다 휘청였던 / 힘의 불균형에게 // 괜찮다며 괜찮다며) 인용 , 『찬란』 (문학과지성사, 2010)